학자적 양심·도덕성 바탕...문민정부 초기 대북정책 원칙의 중심 잡다[기획] 57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 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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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덕 통일원 장관 |
1993년 12월, 북한 핵으로 남북관계가 벽에 부딪힌 순간 통일원장관에 오른 이영덕. 취임과 동시에 그는 가장 풀기 어려운 과제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날은 4개월이었다. 근무기간이 4개월밖에 안 된다. 일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듯하다.
1993년 12월 22일, 김영삼 정부는 내각 개편을 통해 이영덕 명지대 총장 겸 한국교총 회장을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으로 발탁했다. 당시 남북관계는 북핵 문제로 점차 냉각되고 있었고, 통일 정책을 둘러싼 정부 내부의 불협화음도 적지 않았다.
이에 평생 교육계에 몸담으며 적십자회담 대표 등 남북대화 경험을 쌓아온 이영덕 부총리는 성숙하고 안정적인 대북정책을 이끌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다. 취임 직후 그는 현 정부의 3단계 통일방안을 바탕으로 남북화해와 협력을 끌어내고, 전문가 및 국민과 지혜를 모아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원칙론 견지와 한미공조 속에 남북관계는 경색
그러나 취임 직후부터 이 부총리의 강경한 원칙론적 발언과 대북 시각은 현실 외교무대에서 논란을 낳았다. 이 장관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할 때가 되었다", "원칙에 맞지 않는 모양내기식 남북대화는 하지 않겠다"라며 한완상 전 장관의 유화적인 대북접근과 대비되는 보수적 기조를 분명히 했다.
이 시기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미·북 협상과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 요구가 긴박하게 진행되면서, 정부 내 대북 정책의 주도권은 점차 외무부(한승주 장관)와 청와대 안보팀으로 기울었다. 외무부는 대화를 통한 실용적 해결과 국제 공조에 무게를 두었던 반면, 이 부총리의 통일원은 원칙 준수와 '선(先) 남북 특사교환'을 고수했다.
이 과정에서 한미 양국 간, 그리고 정부 부처 간(통일원-외무부-국방부) 정책 조율이 삐걱거리며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여부나 특사교환 전제조건 철회 등을 둘러싸고 극심한 혼선과 진통이 노출되었다.
북한 역시 우리측의 원칙론적 태도와 국제 공조에 반발하며 박영수 북측 대표단장의 '서울 불바다' 발언(1994년 3월 19일, 판문점, 제8차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을 하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는 한편, 한반도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국정 난맥 타개를 위한 총리 취임
북핵 위기와 더불어 내정도 위기를 맞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독자 목소리를 내는 이회창 국무총리를 불신임했고 이 총리는 자진하여 사퇴했다. 그리고 후임 총리로 대체로 무난하고 온건한 성품에 윤리성을 갖춘 것으로 평이 난 이영덕 부총리가 된 것이다.
이영덕 부총리는 영예로운 총리 자리로 올라갔지만, 당시 통일 정책이 명확한 결실을 보지 못하고 북핵 위기 속에서 표류하던 상황이라 아쉬움 속에 단명 장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 김영삼 대통령과 이영덕 국무총리 |
이 부총리의 재임기는 1994년 4월 28일 물러나면서 4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북핵 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안보 악재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대북 정책 원칙을 확립하고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통일관을 제시한 시기로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그는 북한의 일방적인 협상 전술과 명분 없는 대화 제의에 끌려다니지 않고, '원칙 있는 실질적 대화'를 대북 정책의 핵심 기조로 정립했다.
또한 남북관계의 외연을 단순한 정세 변화나 임기응변을 넘어 자유, 복지, 인간의 존엄성 등 헌법적·보편적 가치로 확장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북핵 문제로 인한 극심한 대립 국면 속에서도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판문점 면회소 설치와 우편 교환 등 인도주의적 교류 사업을 별도로 추진하려 했던 점도 그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다만, 미·북 핵협상이 긴박하게 펼쳐지던 미묘한 시점에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인권문제를 직설적으로 제기하거나, 안보팀 내 정책 우선순위 및 표현 수위 조율 과정에서 다소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인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유연한 협상전략의 부재도 아쉽다. 남북 간에 실질적인 대화의 물꼬를 터뜨리지 못하고 위기 국면을 진정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덕 부총리는 학자적 양심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자칫 흔들리기 쉬웠던 문민정부 초기의 대북정책에 든든한 원칙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훗날 국무총리로 차출될 만큼 대통령과 내각, 국민에게 깊은 신뢰를 준 국정 지도자로서 기대대로 정부를 잘 이끌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 남북적십자회담시 이영덕 대표 |
[인물 약력]
1926년 3월 6일 평안남도 강서군 출생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석사
미 오하이오 주립대학 철학 석사, 박사
서울대 교수, 한국교육개발원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1984),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1985)
명지대 총장, 한국교총 회장
김영삼 정부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하면서 입각
국무총리(1994년 4월 30일~1994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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