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흐르는 강 - 몹시 추운 겨울(5)

엄정 | 기사입력 2001/11/09 [16:42]

꿈이 흐르는 강 - 몹시 추운 겨울(5)

엄정 | 입력 : 2001/11/09 [16:42]
소좌는 동일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시켰다. 이미 무장해제 당한 동일은 소좌와 어울려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기까지 했다. 입대 후 그가 느낀 여러가지 문제들을-이를테면 소대안에서는 어리다거나 하는 이유로 놀림을 받을까봐 다른친구들과 이야기하지 못했던 문제들- 스스럼 없이 털어 놓았다. 소좌는 취침조가 기상할 때까지 동일과 이야기하다가 놓아 주었다.

소좌를 비롯한 상급에서 나온 사람들은 약 일주일간 초소에 머울다가 돌아갔다. 동일의 소대는 초소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근무교방을 했다.동일은 초소에서부터 詩작한 신년사 외우기를 포기했다. 소대 정치부소대장이 그에게 金일성수상의 신년사를 외우라고 지시했었다. 신년사를 다 외우면 사단에 올라가서 ‘외우기’경연대회에서 발표하도록하겠다는 것이었다. 동일은 신년사가 실린 신문을 차곡차곡접어서 가슴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외우기 詩작했다.근무시간에도 몰래들여다 보면서 외우기에 열중했다.
그러나 대기중대로 내려온 동일은 더 이상 외우기를 界속할 수 없었다. 1월 6일에 진행된 로동당 인민군당 제4기 제4차 전원회의가 소용돌이를 불러왔던 것이다.
민족보위상 대장 金창봉, 총 참모장 대장 최광, 총정치국장 대장 허봉학, 정찰국장 상장 金정태, 1집단군사령관 상장 최민철, 7집단군사령관 상장 김양춘, 공군 사령관, 해군 사령관을 비롯한 인민군 고위간부들이 일거에 반당 반 혁명분자, 군벌관료주의자로 낙인 찍히면서 집중비판을 받고 옷을 벗었다.
곧이어 각급 부대에서 군벌관료주의를 뿌리뽑기 위한 행사들이 벌어졌다. 하급 부대에서 제일 먼저 벌어진 일은 혁명력사 도록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동일은 사진과 도표, 해설로 이루어진 도록에서 숙청되거나 철직된 사람들의 이름과 활동상황, 사진을 떼어내거나 가리면서 허탈함을 느꼈다. 그는 다른사람들은 몰라도 정찰국장 김정태와 총정치국장 허봉학의 숙청을 왠지 모를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이번 사건은 전의 반당, 반혁명종파분자들의 숙청과는 내용이 많이 달랐다. 당의 정치사상적 통일단결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고 웨치던 시절이었고, 대부분 항일유격대 출신 지휘관들이 대거 옷을 벗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뒤를 이어 숙청된 사람들의 죄상이 정치상학과 잡담을 통해 병사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들의 주된 잘못은 당의 유일적 지도를 거부하고 郡권을 남용했으며 인민군대의 지휘관으로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품성에 대한 것이었다.
어느 지휘관은 자기의 훈련장에서 만난 병사가 자기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하여 지휘봉에 오물을 묻혀 병사에게 핥으라고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동일은 이 이야기를 그전에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지휘관이 통이 크고 용감한 병사를 믿어 준다는, 한편으로는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였다.
집단군사령관인 그 지휘관이 부대를 시찰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그가 병사들의 각개동작을 보고 있는데 한 병사의 동작이 몹시 서툴렀다고 한다. 달려가다가 엎드려사격을 하는데 왼쪽 무릎을 굽혀 땅에 대면서 모로 눕고 다음에 오른손에 든 총을 앞으로 내밀면서 바로 엎드린 다음 사격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그 병사는 몸을 던지듯이 엎드리면서 총을 앞으로 겨눴는데 무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던 것이다.
이를 멀찌감치에서 지켜 보던 사령관이 다가가서 다시 동작하라고 했으나 그 병사의 동작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화난 사령관은 자기가 들고 다니던 지휘봉에 오물을 묻혀서 병사에게 핥으라고 명령했다.
여기에서 사건이 발단했다. 병사가 당연히 거부했던 것이다. 병사는 눈을 똑 바로 뜨고 “못하겠습니다.”라고 한 것이었다. 사령관은 연락병이 차고있던 권총을 빼앗아 들고 다시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때 그의 분대장이 나섰다. 분대장은 자기 대원이 오른 무릎을 다쳤다고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사령관의 총구가 분대장에게 향했다. 이 때 병사가 장탄된 총을 사령관에게 들이댔다.
사령관은 권총을 연락병에게 돌려주면서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었다던가.
그 뒤 분대장은 군관학교에 추천되고 병사는 사령관의 호위병으로 조동되었다는 소리었다.
당시에 병사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멋있는 사령관’이라고 생각했고 한 편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숙청된 고급지휘관들의 죄상을 밝히는 자료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것이었다.
군벌관료주의의 해독을 뿌리 뽑는 작업은 인민군 창건 기념일인 2월 8일까지 마무리되었다. 2월 6일에 오진우대장이 총참모장에 안영환 상장이 총정치국장이 되고 후속인사가 이루어지면서 외형적으로는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
사건의 중요한 초점은 청와대습격사건이 金일성의 명령없이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좌경모험주의가 저지른 죄악으로서 혁명과 건설에 중대한 난관을 조성하였다는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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