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VS 평양]국립묘지와 혁명열사능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02/04/15 [15:46]

[서울 VS 평양]국립묘지와 혁명열사능

통일신문 | 입력 : 2002/04/15 [15:46]
혁명열사능 '혁명 1세대' 안치

오진우등도 이곳에...'혁명열사' 흉상 100여기 설치
"국립묘지 개념 안맞게 김정일 가족묘지화" 지적도

오늘날 전세계 모든 국가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추앙하기 위해 이들을 안치하는 별도의 묘역을 운영하고 있다.
국립묘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국립묘지가 조성된 것은 1955년 7월 15일이다. 육군공병단에 의해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관악산 줄기에 1954년 착공되어 55년 7월 15일「국군묘지」로 조성 되었다가, 1965년 3월 30일 대통령령 제2092호 < 국립묘지령 >에 의해 「국립묘지」로 격상됐다.
현재 국립묘지의 총 면적은 43만여 평(142만㎡)으로 여기에는 6 25전쟁 중 순국한 무명용사 11만여 위를 비롯하여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16만여 위의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국립묘지는 정면에 「충성 분수탑」이 서있고 금잔디가 깔린 광장을 지나면 「현충문」과 「현충탑」이 중앙에 위치해 있다. 이 현충탑 안에는 11만여 무명용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이 탑을 중심으로 동서 묘역에 국가유공자 묘역, 애국지사 묘역, 장군 묘역, 장교 사병 묘역, 경찰관 묘역 등 신분별로 약 5만 위가 질서 정연하게 안치되어 있다.
이러한 국립묘지는 정부의 국립묘역 확대 정책에 따라 1985년 11월 13일 대전직할시 갑동 산36번지에 「국립묘지 대전 분소」가 새로이 설치되었다. 대전 국립묘지는 77년 4월 착공하여 8년6개월의 공사 끝에 계룡산 줄기아래 98만평(323만7,000㎡)의 터에 조성됐으며 묘역은 8만 4천평으로 내부시설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와 똑같은 현충문 현충관 현충탑 등으로 건설됐다.
이 대전 국립묘지에는 1986년 이후 순국한 영령들을 안치하고 있다.
북한도 사회주의 체제 고수와 김일성 김정일에 목숨 바쳐 충성한자들을 안치하기 위해 우리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혁명열사능」과 「애국열사능」이라는 묘역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혁명열사능」은 평양시 대성구역 대성산 주작봉마루에 위치해 있는데 주로 김일성의 빨치산 시절 대원들인 「혁명 1세대」들이 안치되고 있다. 일례로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시절 추종자였던 前인민부력부장 오진우(95.3.1)와 최광(97.2.25)도 이곳 대성산 혁명열사능에 묻혔다. 현재 이곳에는 100여기의 「항일혁명열사」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다.
혁명열사능은 1975년 10월 13월 건립되었으나 1985년 10월 8일 확장, 재건되어 총 부지면적은 35만㎡, 장축의 길이는 1,400m에 달한다.
주요시설물로는 능 상단중앙에 높이 10m, 길이 22m의 붉은 화강암 깃발이 서있으며, 화환증정대에 길이 4.3m, 넓이 2.8m의 영웅메달이 부각돼 있다. 북한은 이 혁명열사능을 국립묘지라는 개념과 맞지 않게 김정일가계의 가족묘지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주작봉 상단에는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의 묘역이 왕릉처럼 조성되어 있고 그 하단에는 김철주(김일성의 동생), 김형권(김일성 삼촌) 등이 안장되어 있다.
또다른 묘역 「애국열사능」은 전후(戰後) 북한체제에 충성을 다한 소위 「공화국 영웅」들이 묻히고 있다.
애국열사능은 평양시 형제산구역 신미동에 1986년 9월 17일 조성됐으며 총부지 33만여㎡로 「애국열사능」이란 현판이 붙은 현관입구에서부터 10여리의 직선도로와 묘비구역을 둘러싼 윤환선도로가 있으며 387명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북한은 98년 9월 정권수립 50주년을 기해 애국열사능의 비석을 「돌사 진」을 부착한 비석으로 모두 교체 했으며, 김정일이 98년 9월 19일 현지 지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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