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바로알기 25. 북한의 역사 인식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0/05/10 [14:51]

북한 바로알기 25. 북한의 역사 인식

통일신문 | 입력 : 2010/05/10 [14:51]

유물 사관을 받아들이고 주체 사관 강조

 

황인표│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

 

 

“우리나라 력사는 슬기롭고 용감한 인민이

안팎의 원수 놈들을 반대하여 싸워 이긴

투쟁의 력사이며 생산과 문화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온 창조의 력사”라고 정의



온 나라의 시선이 배 한척에 쏠려 있다. 그러나 현재는 천안함 사건으로 핫이슈에서 밀려나 있는 듯이 보이지만, 독도 문제나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는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분노하고 공감을 자아내는 문제이기도 하다. 북한도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와 한 목소리로 일본을 비난하는 대열에 동참하면서 그 톤을 높이고 있다.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내는 이슈가 등장한 것이다. 다만,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북한이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로 인해서 시종일관 침묵하고 있는 점도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한의 역사적 이슈에 대한 대응에 새삼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유이다.

북한의 역사 인식은 사회주의 유물사관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사상 체계의 영향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역사관이 병존하고 있음에 비해 북한은 남한과는 전혀 다른 역사관을 발달시키고 있다. 그것은 분단 60년을 넘어서 여타 영역의 이질감보다 훨씬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에 대한 시대 구분이나 역사의 중심에 대한 인식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북한의 역사책 서문에는 예외 없이 주체사상이 등장한다. 따라서 북한의 역사 교육은 “위대한 수령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현명한 영도와 세심한 가르치심에 따른 기념비적인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그에 이바지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겠다. 북한의 ‘주체 학습론’에 따르면, “력사 학습에서의 기본은 자주성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의 력사, 창조적 력사를 학습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들의 역사 교과서에도 “우리나라 력사는 슬기롭고 용감한 인민이 안팎의 원수 놈들을 반대하여 싸워 이긴 투쟁의 력사이며 생산과 문화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온 창조의 력사”라고 정의하고 있다.

북한의 역사 인식 체계가 우리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유물 사관을 받아들이고 주체 사관을 강조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큰 틀 속에서, 북한의 역사 인식에 대해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는 연구 결과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열거하고 있다.

첫째, 북한 역사 인식의 근본은 마르크스의 유물 사관 또는 사적 유물론에 두고 있다.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의 법칙은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변화에 따른다고 하였다. 그는 리스트의 영향을 받아 역사 발전의 과정을 원시 공동체 사회 ― 고대 노예제 사회 ― 중세 봉건제 사회 ― 근대 자본주의 사회 ― 공산주의 사회로 분류하고 있는데, 북한의 역사 단계 분류 방식은 이에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원시 ― 고대 ― 중세 ― 근세 ― 근대 ― 현대로 분류하고 있음에 반해, 북한은 원시 ― 노예제 ― 봉건 ― 근대 ― 현대 사회로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북한에서는 봉건사회의 기간을 삼국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로 보고 있음도 관심가는 대목이다. 유물 사관은 역사 발전을 합법칙성에 근거한 연역적 사실로서 설명하는데, 북한의 역사 서술도 전체사, 거시사, 일반사 등 큰 틀 속에서 정리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둘째, 북한의 역사관은 투쟁 중심 사관이다. 북한에서는 원시 시대에는 ‘자연과의 투쟁,’ 고대에서 근대까지는 ‘지주와의 투쟁’ 및 ‘외적과의 투쟁,’ 근대 이후에는 ‘민족의 독립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자본가와의 투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나타난 만적·효심의 난과 같은 내용을 인민들의 자주적 투쟁으로 묘사한 점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셋째, 현대 중심 사관이다. 북한에서는 역사 서술의 중심이 현대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국사편차위원회’가 있다면, 북한에는 ‘조선력사편찬위원회’가 있는데, 그곳에서 각각 편찬한 『한국사』22권과 『조선전사』33권중 현대를 서술하고 있는 부분에서 남북이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한국사』22권 중 2권만이 현대사 부분이라면, 『조선전사』33권중 18권(1926년 이후)이 현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북한에서 현대의 기준은 김일성 활동기를 기점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김일성 가계의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깊게 깔려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넷째, 한반도와 평양 중심 사관이다. 우리 민족이 ‘우랄·알타이’족의 한 분파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는 ‘민족 이동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 비해, 북한은 ‘한민족 본토 기원설’을 주장하면서 이미 60만-40만 년 전에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원인이 거주하고 그들이 진화해서 오늘의 한민족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향후 통일 과정에서 수도 설정이나 중심 권역에 대한 논의에서 논란거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고구려·고려를 강조하는 역사 서술이다. 북한은 한반도 기원설 및 평양 중심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신라에 의한 삼국 통일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단군릉 및 동명왕릉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 및 복원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1993년 북한은 평양 부근에서 단군릉을 발굴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화가 사실로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객관적 검증은 확정적이지 않다. 더구나 단군왕검의 발원 시기도 2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고구려의 건국 시기도 B.C. 277년으로 설정하여 남한보다 약 250년 정도나 앞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고구려의 왕계표를 보면 ‘유리왕’에 와서야 시기적 일치를 보고 있을 뿐이다. 급기야는 대동강을 세계 5대 문명의 발상지로 설정하여 그에 대한 연구물들을 발표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대동강 문명권 주장이나 본토기원설 및 단군왕검 존재의 시기에 대한 주장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역사의 진전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이 북한의 현대사 강조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의도적인 왜곡일 경우 후세에 미치는 영향은 깊이 고려해야 할 일이다. 통일 이후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될 지역간 갈등이나 시비의 문제는 고스란히 후세들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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