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정] 5년 후 회사를 차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2/02/13 [13:35]

[내 삶의 여정] 5년 후 회사를 차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통일신문 | 입력 : 2012/02/13 [13:35]
신윤철 男 2010년 탈북

남한에 와서 일자리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탈북자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서 제한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우리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정착하는데 가장 어려운 것이 직장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직장을 구하는 데 별 어려움도 없었고 일자리를 구한지 8개월 후에 과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남한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았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잘 살 수 있는 나라인 것을 느끼면서 정말 잘 왔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외쳤습니다.
저는 2010년 7월 남한으로 왔습니다. 지금 이문동에서 혼자 살고 있는 50세의 재단사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피복일을 20년간 하다 러시아 벌목공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밤 11시에 일이 모두 끝나면 남한방송을 자주 들었습니다. 개혁방송도 들었습니다. 방송 중에서 재미있게 들은 것은 탈북자들의 수기입니다. 저는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남한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북한에서 재단일을 했기에 노하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재단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남한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남한에서 쓰는 피복일에 대한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우선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남북이 다르게 쓰고 있는 재단에 대한 전문용어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취직을 했습니다. 제 첫 월급은 180만원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이들 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동료들이 무시하기도 하고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갈등도 하고 때로는 답답해하기도 했지만  묵묵히 실수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일했습니다.
8개월이 지난 후 저는 과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월급도 200~220만원으로 인상되었지요. 물론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북한에서는 젊은 20대 처녀들이 재단 일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50대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인지 기계로 하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남한이 우수하지만 손으로 하는 면에서는 솜씨가 뛰어난 북한의 처녀들이 월등히 잘 합니다. 
제가 이곳 직장에서 일하면서 터득한 남한에서 정착하기 어렵다는 탈북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3개월은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개월이 지나도 맞지 않다면 미련 없이 그만두어야 합니다. 1달 해보고 힘들다고 그만 둔다면 어디에 가서도 일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3개월 하고 조금 견딜 만 하다면 열심히 끈질기게 하십시오. 여기가 아니면 갈 데가 없다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면 남한은 정말 살만한 곳입니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을 감시한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저는 5개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남의 밑에서 일을 하기에는 나이도 많고, 그보다 제 기술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저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왜 진작 남한으로 오지 않았는지, 빨리 왔으면 지금쯤 부자가 되어 있을 텐데 가끔은 스스로 탓하기도 합니다. 빠르면 3년, 아니면 5년 안에 제 회사를 차릴 것입니다. 제가 혼자 지출하는 돈은 관리비와 생활비를 합해 한 달에 70만 원 정도 나머지는 저축을 합니다. 약 1억 5천은 돼야 사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원을 같이 나온 친구들과 가끔 만날 뿐 돈을 잘 쓰지 않습니다. 왜 외롭게 혼자 사느냐면서 결혼도 하라고 하지만 아직은 혼자가 좋습니다. 아마 러시아에서 몇 년 동안 혼자 있어서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모든 생활면에서 만족을 줄 수 있는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습니다.
언제든 겨울이면 뜨거운 물과 찬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저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 것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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