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칼럼 >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03/11/17 [12:04]

< 기자칼럼 >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

통일신문 | 입력 : 2003/11/17 [12:04]
정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단속과 강제추방 결정이 또 다른 아픔과 죽음을 부르고 있다. 달리는 전철 위에 몸을 던지고 차디찬 공장 천장 위에 목을 매는 노동자들. 그들이 그토록 꿈꾸었던 코리안 드림은 그렇게 시들어갔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경제상황에 힘들어하고 있다. 청년실업이 장기화, 고착화되어가고 있고 이젠 그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돌볼 여력이 없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인 것 같다. 가슴아픈 일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자국이익을 우선시 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두고 비난하는 것은 다만 도덕적 질타일 뿐 현실세계에선 이상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느냐라는 점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힘이 없는 나라의 백성은 억울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곧장 우리 스스로에게도 연결되지 않을까?
우리는 유사이래 주변국에게 떵떵거리며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다. 언제나 약소국이라는 설움과 핍박 속에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해왔을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예의를 갖춘 민족이라 칭한다. 따뜻한 인간미와 높은 정신적 수준을 자랑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할 처지인 것 같다. 미국이 그동안 인종차별로 비난을 받아왔던 것도, 일본이 우리를 그토록 모질게 탄압했던 것도, 통일 독일이 통일 후 10여 년간 100여명이 넘은 자국의 외국인들을 지독한 국수주의란 이름으로 살해했던 것도 우리는 모두 눈을 감아버려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동안 우리 스스로 하기 힘들다고 싫어한 일들을 우리보다 절반의 임금을 받고, 우리보다 반의 반도 안되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당했다면 당장 분노하고 처벌했을 만한 인간적 탄압과 폭력을 감수해가며 일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는가?
폭행, 임금 체불, 강간, 살인 등 세상에서 하면 안되는 것들을 그들에게 저질러 오지 않았나? 우리에게 와서 온갖 핍박과 억압속에 결국은 우리가 하기 싫은 일들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불법으로 들어왔고 우리도 실업자가 많은 판에 어쩔수 없다는 논리는 결국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닌 소모품 정도로 바라보고 이제 쓸모가 없으니 돌아가라는 말밖에 안되는 것이 아닌가? 부르지 않았는데 왔으니 어서 돌아가라? 그렇다면 그들이 이 나라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보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15만이 되는 불법 노동자들은 이제 어떤 식으로든 한국에 남아 있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불행들, 범죄, 자살 등이 벌어질 것이다. 15만명의 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추방하려면 150개월이 걸린다는 운동단체의 주장이 말해주듯 우리는 이제 다른 각도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들이 한국을 떠날 때 적어도 처음 왔을 때의 그 희망과 꿈을 채워주지는 못할망정 온갖 추악한 기억과 한국에 대한 저주만을 안고 떠나게 하지는 말자.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있는 것이라고는 정말 몸뚱이 밖에 없어서 광부로 간호사로 노동자로 해외로 팔려나갔다.
과거를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지금도 미국에서, 일본에서 불법 체류자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며 착취와 압박속에 살고 있는가? ‘힘이 없으면 다 그런거야’라는 말은 하지 말자. 지금 우리가 만약 영영 이대로 힘이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면 우리도 결국 평생 강대국에게 당하며 살 수 밖에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르완다 난민의 생명과 월스트리트 사업가의 생명은 그 가치가 다를 수 없다. 외국인 근로자의 꿈과 희망은 청와대나 국회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보다 싸구려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가치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하철 레일위에 누워 달려오는 전철을 하여없이 바라보았을 그 외국인 노동자의 눈빛이 떠오른다.
“한국에서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는 그의 꺾여진 희망을...
더 이상 우리, 인간이길 포기하지 말자.
  • 도배방지 이미지

인공호수 연풍호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