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의 아들인 모안영, 이 다리 건너 참전…한달 후 전사

[2018 북·중 국경 단둥을 가다<6>] 애국심 부추기는 청성교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8/10/25 [13:31]

모택동의 아들인 모안영, 이 다리 건너 참전…한달 후 전사

[2018 북·중 국경 단둥을 가다<6>] 애국심 부추기는 청성교

통일신문 | 입력 : 2018/10/25 [13:31]

 

6.25전쟁과 관련이 깊은 다리는

중공군 총사령관 팽덕회가 부하들을

이끌고 참전한 루트로 제39군, 제40군,

지원군 3병단 등이 이 다리를 건넜고

군용물자들이 대량 지원되던 통로였다

 

청성교(淸城橋 허커우단교)는 관전만족자치현 하구와 북한 평안남도 청성군을 연결하는 다리다.

6.25전쟁과 관련이 깊은 이 다리는 1950년 10월 19일 중공군 총사령관인 팽덕회(彭德懷 펑더화이)가 부하들을 이끌고 참전한 루트로 제39군, 제40군, 지원군 3병단 등이 이 다리를 건넜고, 군용물자들이 대량 지원되던 통로였다.

당시 모택동의 맏아들인 모안영(毛岸英 마오안잉)도 팽의 러시아어 통역장교로 이 다리를 건너 참전했다.

하지만 모안영은 참전 한 달 조금 넘은 11월 25일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동에서 미군 전투기 폭격으로 전사했다. 11월 24일 두 대의 정찰기가 떠 중공군의 위치를 탐지하고, 다음 날 정오에 4개의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그 중 하나가 모안영이 있는 동굴 근처에 떨어져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본국 이송이냐 아니냐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평안북도 회창군 인민지원군 총사령부 열사릉원에 묻혀있다. 이런 이유로 청성교는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학습장으로 변모됐다.

관전만족자치현은 2012년부터 이곳을 성역화하기 위해 주변을 정비하고 모안영 학교를 설립하는가 하면 모안영 동상과 참전 지휘관들의 흉상을 도열시키는 등 공을 들였다.

지난해는 말을 탄 팽덕회의 대형 동상을 광장에 설치하고 전투기와 탱크 등도 배치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애국심도 고취시키고 돈도 벌자는 계산이 깔린 결과물이다.

청성교는 단둥 시내에서 40㎞ 가량 떨어져 있다.

1942년 일제에 의해 건설된 이 다리는 압록강에서 가장 큰 도로교로 건설됐다. 길이 709m, 폭 6m, 높이 25m로 총 22개의 교각으로 만들어졌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29일 중공군의 보급로를 차단한다는 목적으로 3개의 교각(200m)이 미군 폭격에 의해 폭파돼 ‘제2의 단교’로 불린다.

 

중국쪽 다리 끝단에 서서 북한 쪽 바라

보면 집들을 빼놓고는 모두 옥수수 밭

그 옥수수 밭을 지키겠다고 하얀 비닐

움막이 쳐져있는데 한낮에도 사람이

들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단교에 올라가면 진입로에 팽덕회와 참전 지휘관들의 흉상이 좌우에 도열해 있고 다리 시작지점엔 청성교(淸城橋)라고 한문으로 표기돼 있다. 그 옆으로 작은 토치카가 있고 6.25 전쟁 당시 현황과 전공 등을 새긴 현판이 곳곳에 부착돼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953년 7월 13일 금성전투에서 뺏은 수도사단 백호연대기(항미원조기념관 소장)를 현판으로 내걸었지만 이번에 보니 없어졌다. 사실 이 연대기에는 ‘우승(優勝)’이라는 표기가 있어 연대 깃발은 아니고 체육대회 우승 깃발인 듯했다.

다리를 따라 가면 항미원조전쟁(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운 전쟁)당시 무공 등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중국쪽 다리 끝단에 서서 북한 쪽을 바라보면 집들을 빼놓고는 모두 다 옥수수 밭이다. 그 옥수수 밭을 지키겠다고 하얀 비닐 움막이 쳐져있는데 한낮에도 사람이 들어앉은 모습이 보였다.

군인 초소가 예전에는 북한쪽 다리 시작지점에 기와지붕의 단층이었지만 지금은 2층 하늘색 초소로 바뀌었고 다리가 아닌 뒤로 옮겨졌다. 단교 끝에서 강가를 보니 북한 병사와 민간인들이 보트를 정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한참을 봤더니 수리를 하는 듯했다.

그러자 병사 한 명이 갈증이 나는지 모자를 뒤로 쓰고 뒷짐을 지고는 입만 강에 대고 벌컥벌컥 물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페트병이 둥둥 떠다니는 그리 깨끗하지 않은 물인데 그걸 마시는 병사의 모습에서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다리를 다시 돌아 나오는 데 오른쪽으로 말을 탄 팽덕회가 나를 따르라고 손짓하는 동상이 보였다. 6.25전쟁에 웬 말일까 하고 생각해 보니 좀 안 맞는 듯했다. 나폴레옹을 흉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좀 거시기해 보였다.

청성교는 지은 지 76년이나 됐다. 단교가 되고도 6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중국인들에게 항미원조 정신을 일깨우며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장소로 만든 것이야 뭐라 할 순 없지만 ‘옥수수 왕국’인 초라한 북한과 대비되는 현장이어서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졌다.

양승진 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인공호수 연풍호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