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달빛속에 촉혼은 운다

두견새울음 구슬픈데 산에 달은 나직이 걸렸더라(끝)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9/03/21 [12:49]

[황진이] 달빛속에 촉혼은 운다

두견새울음 구슬픈데 산에 달은 나직이 걸렸더라(끝)

통일신문 | 입력 : 2019/03/21 [12:49]

진이는 “워낙 인물이 뛰여나면 시비군들이 생기게 마련이느니. 근데 령중 추대감같이 점잖은 분들두 진이 칭찬을 침이 마르게 하시던거. 흔히 이름난 인물을 만나보면 소문보다 실지가 못한 법인데 진이는 오히려 소문을 뛰여넘는다는 거야.”

“참, 자네 몇 년 전인가 아주 창피한 추문으로 망신을 당하구 벼슬이 떨어져서 락향한 경직이를 알지?

“우찬성으루 있던 김희열이 말인가?”

“그래. 소문에는 진이가 어쩌구저쩌구. 대궐 안에 줄을 당겨서 그 친구를 그 꼴루 만들어놨다구 하던데 그게 정말인가?”

“글세 그런 말이 돌더군. 그 사람이 언젠가 송도류수루 있을 때 진이한테 무슨 원형을 샀다던지…아무튼 계집이 함원으로 하문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데 진이처럼 재주가 비상한 계집한테 원혐을 사구 뒤가 무사할 텐가? 십중팔구 그런 일을 당했기가 첩경 쉽지.”

입이 무거운 군수가 그들의 이야기에 끼여들었다.

“진이 소문은 시골에서두 많이들 입에 올립니다. 듣자니 기예와 재색이 뛰여난 것두 사실이지만 사내들과의 정사가 건건이 요절할 만큼 재미있어서 그게 그렇게 이야기거리라구들 그럽디다그려.”

서울 량반이 껄껄 웃었다. 눈이 가느스름해지며 예쁘장한 제비수염을 살살 쓰다듬는 것을 보면 생각만 떠올려도 간질간질하도록 재미있어서 좌중에 털어놓지 않고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였다.

“그런 말이 돌만도 하지요. 요절할 이야기두 많구 해피한 이야기두 많습니다. 내가 외직에 나갔다가 2년 만에 돌아와보니 내 친구 리사종이하구두 그러루한 정사가 있었다는데 그게 아주 희한한 이야기거립디다. 근데 풍류남아와 절대가인이 서로 만나서 사랑에 빠진 건 자연스럽다구 하겠지만 상감나누라님의 특별한 지우를 입던 그 친구가 돌연 진이한테 미쳐서 선전관의 벼슬까지 집어 내던졌으니 경악할 일이 아닙니까? 올 봄 내가 외직에서 돌아왔을 때는 둘이 함께 산수유람을 떠났다는데 여름이 지나 가을이 깊두룩 종무소식입니다.”

좌중의 량반들은 모두 귀가 항아리만해져서 서울 손님의 진이 이야기를 듣느라구 정신이 없었다. 주인 안교리는 리사종과 진이의 사랑이야기에서 마치 큰 뜻이라도 깨달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러기에 사대부란 자기를 다잡을 줄 알아야 하느니. 한위공의 글이 있지 않은가? 계집이 군자를 해치는 것이 마치 벌이 다른 동물한테 독을 쏘는 것과 같다구 말이야. 그러니 스스로 계집을 멀리해서 화를 피하도록 해야 한다구 말일세.”…

---아희야 봄바람이 몇 날이냐/수풀속에 자고 가면 그도 재미라/초양왕도 즐거운 인간사를 다 버리고/무산십이봉에 운우의 꿈만 꾸더라.두어라 신선의 생애는 꿈뿐이니/거문고를 베고 누워 잠이나 청하련다---

황진이가 창도읍에서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이후부터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 그때 진이의 나이는 갓 30, 기생의 나이로는 환진갑이라는 우스개말이 있으나 사람의 한생으로는 말 그대로 구십춘광의 한창때였다.

어째서 진이의 행적이 무르녹은 아름다움의 절정에 올라 선 그 나이에 불쑥 끊어 져 버렸을가. 혹시 정처 없이 방랑길에서 파란만장의 불우한 생을 끝마치고 불귀의 객이 된 것은 아니었을가. 그때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그의 발자취를 추적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황진이의 사망년대를 짐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고사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니 1578년, 무인년에 소설 ‘원생몽유록’의 저자인 백호 림제가 평안도사로 부임해 가던 길에 잡초 우거진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서 재주를 붓고 절을 하고 곡을 하고 시조를 읊은 것이 량사의 탄핵에 올라 부임지에 채 가닿기도 전에 벼슬이 떨어 졌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때 그가 읊었다는 시조의 내용으로 짐작해 보면 진이가 한창나이에 요절을 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 싶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이 인간은 몇 해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추억 속에 얼마나 깊은 자욱을 남겼는가가 중요한 것이요. 그래서 죽음과 함께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이 있는 것이다.

권력과 세도를 휘두르던 폭군들의 우장한 돌무덤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무너지고 바사져 모래와 흙이 되었으나 길가에 앉은 진이의 나지막한 봉분은 4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모습그대로 남아 있어 오가는 길손들에게 애절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뉘라서 그의 짧은 한생을 불우한 것이라고만 이르라.

이제 우리는 주인공 황진이와 작별하면서 백호 림제가 그의 무덤 앞에서 지었다는 문제의 그 시조를 읊어 보며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청초 우거진 곳에/자난다 누웠난다/홍안을 어데 두고/백골만 묻혔난다/잔 잡고 권할이 없으니/그를 설어 하노라

* 이번 주로 북한 작가 홍석중의 장편소설 ‘황진이’가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황진이를 애독하여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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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수 연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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