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가 북한에 관심이 없으면 통일의 가능성 낮아진다"

[인터뷰] 오준 前 유엔주재 한국 대사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19/04/18 [15:20]

"미래세대가 북한에 관심이 없으면 통일의 가능성 낮아진다"

[인터뷰] 오준 前 유엔주재 한국 대사

통일신문 | 입력 : 2019/04/18 [15:20]

1년 전 이맘 때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있은 4·27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해 한반도는 평화무드에 빠졌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공동기자 회견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공동인식을 분명하게 피력했다.

이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각각 판문점 북측 지역과 평양에서 진행됐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대중연설을 한 것은 어딘가 어색했으나 비핵화를 위한 수순으로 국민들은 이해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정상회담이 두 차례 있었다. 작년 6월 싱가포르, 올해 2월 베트남서의 회담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환호하고 미소를 지을만한 북한의 비핵화 결단이나 선언 등은 전혀 없었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이다. 남한과 북한은 적대이면서 특수 관계이다. 한반도에 꼬여진 북한의 비핵화는 정말 중요하다. 전문가로부터 비핵화에 대한 고언을 듣고자 오준 전 유엔주재 한국대사를 만났다.

▶판문점 4·27남북정상회담 1주년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1년 전 이맘때 있었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과거의 정상회담과 크게 다르다. 2000년과 2007년에 있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에 있었다. 작년 판문점회담은 2017년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다른 이후에 이뤄졌다는데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판문점회담이 역사적 이벤트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작년의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지난 1년의 과정은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남북대화와 교류를 재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가 지속적이기 위해서는 북한핵문제 해결이 필수다. 왜냐면 2006년 이후 6차례의 핵실험과 8차례의 유엔 안보리제재 결의를 통해서 북한핵문제는 이제 남북한 또는 북미 간의 문제를 넘어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안보문제의 하나로 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북한이 30년간 걸쳐 개발해온 핵을 몇 번의 정상회담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따라서 현시점은 어렵게 조성된 한반도 평화무드가 어떻게 하면 북한 비핵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로 전환되도록 할 것이냐에 집중할 때라고 본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났다.

북한 측에서는 영변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2016년과 17년에 유엔에서 채택된 5개의 대북제재를 풀어줄 것을 미국 측에 요구했다. 내가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요구이다. 유엔의 제재 결의안은 같은 성격의 제재를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채택된다. 예를 들자면 처음에는 북한 수출의 50% 정도를 금지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북한이 또 다른 도발을 하면 70%로, 90%로 점차 강화하는 수순을 밟은 것이다.

북한은 그 중에 맨 마지막 제재결의 즉 90%를 금지한 결의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니까 결국 모든 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궁극적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제재해제가 맞바꿔져야 한다는 뜻에서 미국 측은 그러한 제재해제를 위해서는 영변 뿐 아니고 북한이 모든 핵·미사일 능력과 시설을 포기해야 한다고 대응하였고 결국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에서 꼭 모든 것을 맞바꾸는 소위 ‘빅딜’이 이뤄져야만 했던 것은 아니고 영변을 중심으로 한 부분적 비핵화와 금강산관광 등 일부 부분적 제재완화에 합의하는 ‘스몰딜’도 가능했다고 봤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제재해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북한의 내심만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1년의

과정은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남북대화와 교류를 재개하는 성과 거둬

 

북한이 30년간 걸쳐 개발해온 핵을 몇 번의

정상회담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

현시점은 어렵게 조성된 한반도 평화무드가

비핵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로 전환

되도록 할 것이냐에 집중할 때로 볼 수 있어

 

▶북미 양측이 사전에 충분히 조율하지 않았나?

물론 사전에 양측 실무자들이 조율을 했겠지만 그것은 소위 ‘스몰딜’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양 정상이 만났을 때 실무자들이 해놓은 수준에서 합의하고 각각 국내적으로 진전이 이뤄졌다고 홍보하는 수순을 밟을 수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모두 개성과 성취욕이 강하고 자신감도 많아서 그 정도에 만족하지 못한 것 같다. 리더가 직접 나서는 ‘톱다운’ 방식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이후 북미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의 성과는 양측이 모두 상대방을 조금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와 일부 제재해제를 맞바꾸는 이외에 대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그런 합의를 할 의도가 있다면 그 과정에서 최대한의 대가를 받아내는 데 집중할 것이다. 반대로 그런 의도가 없다면 서로 밀고 당기는 답보상태가 한동안 직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사회 제재 하에서 북한의 생존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경제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언젠가는 결단을 내려야한다. 내년에 대선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북핵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본격적인 남북협력이 가능한 우리 정부로서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도 어렵게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을 했으니 대화의 국면을 깨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 대통령의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을 어떻게 보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방문 후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거나 혹은 특사를 파견한다면 북한과 미국이 현시점에서 상대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돌파구를 열기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 검토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제재해제를 맞바꾼다는 큰 틀에 대한 합의가 필수적이다. 부분적이고 단계적인 진전도 그러한 최종목표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핵무기의 보유는 김정은 정권에 최대의 위협이 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한지 오래다. 북한만이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국가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주민들도 주변 국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고 있으며 그 불만이 누적되기 때문에 지속 강화되는 국제제재로 경제개혁을 할 수 없다는 현실도 결국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된다.

따라서 북한은 주민들의 복지는 물론이고 정권의 안보를 위해서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만 하면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것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그러한 혜택들을 실제로 담보해줄 수 있는 현재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기회가 무한정 계속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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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2월 22일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세상 사람들을 많이 숙연하게 만든 아주 특별한 연설이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이 유엔안보리 이사국을 역임한 2년간 그 이사국 자격 마지막으로 한 유엔 주재 오 준 한국대사의 연설이다.

…“2년 전 처음 저희가 유엔 안보리회의에 참여했을 때 첫 안건은 북한의 미사일과 핵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마지막 안건도 북한 인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연의 일치이겠지요. 하지만 제 마음은 매우 무겁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북한주민은 ‘그저 아무나’(anybodies)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수백만 명의 이산가족에겐 아직 북쪽에 그들의 가족이 남아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고 분단의 고통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겨우 수백km 떨어진 그곳에 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에 적힌 인권침해의 참상을 읽으면 우리 가슴도 함께 찢어지고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마치 우리가 그런 비극을 당한 것처럼 같이 울지 않을 수 없고 슬픔을 나누게 됩니다. 먼 훗날 언젠가 오늘 우리가 한 일을 되돌아 볼 때 우리와 똑같이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북한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다시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명연설이다. 오 전 대사는 “당시 연설은 오 대사가 직접 준비한 것인가?”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 사상 최초로 북한 인권문제가 유엔안보리에 상정되었고 그날이 우리나라의 안보리 임기 마지막 날이라서 평소의 내 생각과 감정을 조금 더 진지하게 얘기 했을 뿐이다”고 했다.

▶국제무대에서 북한 외교관들은 어떻게 보이나?

북한 외교관들이 우리 외교관을 대하는 태도는 한반도에서 남북한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남북한 간에 긴장관계가 조성된 때는 행사장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겨우 인사말 정도만 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인사말을 넘어 환담이나 깊은 내용의 대화도 나눈다.

우리는 최소한 냉전이 끝난 후에는 가급적 정치상황과 무관하게 편하게 대하고 싶다. 그런데 북한 외교관들은 평양의 지침을 다소 의식하는 것 같고 그에 따라 표정과 행동이 경색되고 딱딱해지는 경우가 많다.

 

북한 외교관중 리용호 외무상 기억에 남아

89년 카트만드에서 유엔군축회의 때 만나

당시 외무부 입사 11년 차 서기관이었고

리용호도 서기관 급으로 그 회의에 참석

영어에 능통하고 눈에 띠게 유연한 태도와

회의연설 등에 능력을 보여주던 것이 선해

 

▶북한 외교관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은…

몇 사람 있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다. 꼭 30년 전인 1989년 네팔의 수도 카트만드에서 유엔군축회의에 참석할 때 처음 만났다. 나는 당시 외무부 입사 11년 차 서기관이었고 북한대표단의 리용호도 서기관 급으로 그 회의에 참석하였다. 당시 리용호 서기관은 영어에 능통하고 북한 외교관으로서는 눈에 띠게 유연한 태도와 회의연설 등에 능력을 보여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유엔 대사 역임 중 탈북민과 관련해 잊혀지지 않은 것이 있나?

림일 작가가 2015년 4월 워싱턴과 뉴욕의 유엔본부에 와서 북한해외근로자 인권실태를 증언했지만 그 전과 후로도 많은 탈북민이 유엔에서 북한인권상황에 대하여 증언을 하였다. 그걸 보면서 탈북민들이 국제사회는 물론 국민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어릴 적부터 북한 출신 친인척이 흔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는 북한 사람을 실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고 방송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인식만을 갖는다. 우리의 미래 세대가 북한에 관심이 없으면 통일의 가능성은 점점 더 낮아질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55년 10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졸업, 미국 스탠포드대학 석사과정을 했다. 1978년 외무고시 12회에 합격, 외무부에 입부한 후 다자외교조정관, 싱가포르 대사, 유엔 대사를 끝으로 2017년 38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퇴직했다. 외교관으로 근무 중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의장, 유엔군축위원회(UNDC) 의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직 등을 수행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미 스탠포드대학 석사과정

외무부에 입부한 후 싱가포르, 유엔대사 지내

2017년 38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퇴직

현재 국제NGO 세이브 칠드런코리아 이사장

세계장애인권단체 등서 역할 수행하고 있어

 

▶현재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던데…

외교관 생활을 마친 후에는 대학과 사회단체들에서 활동하기로 오래 전부터 마음을 먹었다. 2017년 3월부터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KDI대학원 초빙교수, 싱가포르 난양공대 국제문제연구소(RSIS) 방문교수 등으로 강단에 섰다. 사회단체 활동은 국제 NGO인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세계장애인권리협약 의장 경험을 활용하여 4~5개의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가족 중에 북한 연고자가 있는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향이 개성이어서 어려서 개성식 음식을 많이 먹으며 자랐다. 나에게 가끔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아직 북한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또한 고향이 함경도인 장인어른은 6·25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계속 하였으나 결국 당첨되지 않아서 기회를 얻지 못하셨고 15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판문점 4·27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시작으로 이 땅에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열렸으면 좋겠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한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통일의 길로 나아가려면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북한의 비핵화이다.

그것 외에 다른 출구가 없다는 점을 북한이 깨닫기를 바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천만 인민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 진정한 ‘인민의 지도자’로서 통 큰 결단을 해주기 바란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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