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대에서 정치력 발휘...새로운 독일위해 힘 모으며 갈등도 치유”

[인터뷰] ‘한·독 통일포럼’ 출범한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원장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2/25 [22:09]

“세계무대에서 정치력 발휘...새로운 독일위해 힘 모으며 갈등도 치유”

[인터뷰] ‘한·독 통일포럼’ 출범한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원장

통일신문 | 입력 : 2021/02/25 [22:09]

 

▲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원장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하고 통일연구원에서 통일의 길을 걸었다. 통일연구원장으로 퇴임한 후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한국DMZ학회장, 중국 천진외대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한·독통일포럼을 출범한 손기웅 원장은 독일통일 사례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끝까지 가야만 한다. 이제껏 온 길을 돌아보고 갈 길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지난해 12월 ‘한·독 통일포럼’을 창립했습니다. 설립배경과 목적은 무엇인지요?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정책적 의미를 현실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활용하려는데 있습니다. 독일의 통일과정 및 통일 이후 통합 사례를 한반도에 창조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역내 통합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고, 유럽통합에서 독일의 역할, 유럽통합과 독일통일 간의 상관관계 역시 토론하여 창조적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한·독 협력을 추진할 것입니다. 독일의 ‘한스-자이델 재단’이 여기에 전적으로 뜻을 함께하여 ‘한국평화협력연구원’과 공동으로‘한·독통일포럼’을 운영할 것입니다."

 

▲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헌법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존중한다면 독일통일 사례가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입니다. 세 가지 측면에서 논거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독일통일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독일을 흡수통일이라고 하는데 평화적 합의 통일입니다. 동독 주민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고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1990년 3월 18일 자유 총선거를 통해 서독과의 조속한 통일을 민족자결로 결정지었습니다. 이후 동서독의 합의를 통해 1990년 10월 3일 통일한 것입니다. 

우리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상정하는 ‘남북화해협력’, ‘남북연합’, ‘통일’이란 세 단계에 비춰보면 독일이 ‘연합’과 ‘통일’을 11개월 만에 압축적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평화적 합의통일에서 결정적으로 역할 한 것은 동독 주민의 의지와 염원이었습니다. 

지난 세기에 두 번이나 전쟁을 일으켜 인류에게 재앙을 안겼던 독일이 통일한다는데 전승 4국(미국, 당시 소련, 영국, 불란서)은 물론이고 폴란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등 이웃국가 중 어느 국가가 선뜻 찬동했겠습니까? 더구나 서독이 동독을 강제로 흡수하려했다면 과연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겠습니까? 동독 주민이 통일의 길을 걸어왔고, 서독이 그 길을 잘 인도한 평화적 합의통일입니다.

둘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통일했습니다. 독일 헌법인 기본법과 독일 국가구성체의 근간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입니다. 우리 법제처의 공식 대한민국헌법 영문판에 전문과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되어있어 독일과 동일합니다. 

즉 흔히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가 현재는 물론이고 통일된 조국의 기본가치입니다. 사실 우리가 헌법을 만들 때 독일(당시 서독) 헌법을 참고했고, 그것을 축약하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통일된 독일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분단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정치적 주권을 획득했음은 물론이고 세계무대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구 동서독 지역 간 불균형이 존재하지만, EU 전체 GDP의 약 1/3을 차지하는 강력한 경제력을 건설했습니다. 군사 주권도 회복했고, 구 동서독 주민이 함께 새로운 독일을 만들고자 힘을 모으면서 갈등도 치유되고 있습니다."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정책적 의미

현실에 맞춰 공론화하고 활용하는데 목적 있어

유럽통합과 독일통일 간의 상관관계 토론하며

창조적 활용...독일통일은 한반도 모델 될 수도

 

▲ 올해 ‘한·독통일포럼’의 활동계획이 궁금합니다.

"한반도와 독일은 다릅니다. 역사, 정치, 사회문화 등등 차이가 분명히 있어 독일통일 사례를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큰 틀과 방향에서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 독일 사례를 지금의 현실에 맞도록 정책화하고 공론화하여 헌법 4조에 부응하는 통일의 길을 개척하고 현실화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특히 청소년들에게 왜 통일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가,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 것인가를 함께 토론할 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하는데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통일아카데미 운영, 분단과 통일의 현장 답사, 학술회의 개최 등을 금년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독일통일의 현장에 있었는데 그 당시의 감회를 듣고 싶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여겼던 3.2m 높이의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다짐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통일은 독일보다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정치, 경제 등 상황적 차이도 물론이지만, 독일통일 자체가 우리에게 어려움이 되었습니다. 사회주의형제국, 특히 당시 사회주의 제1의 경제 강국이었던 동독이 왜 하루아침에 무너졌는가를 북한이 우리보다 더 열심히 연구했을 것이고, 대비책을 강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어려워졌다고 해서 통일의 길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 강국 건설은 물론이고,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정치 강국, 군사적 주권, 통합된 사회를 위해서 통일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독일통일 사례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끝까지 가야만 합니다. 이제껏 온 길을 돌아보고 갈 길을 설계해야 합니다. ‘한·독통일포럼’의 출범은 베를린장벽 붕괴 시 가졌던 각오를 제 스스로 다시 다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통일은 독일보다 어려울 것...정치, 경제 등

상황적 차이도 있지만, 사회주의형제국, 사회주의 

제1의 경제강국이었던 동독 무너진 것을 북한이

열심히 연구했을 것이고, 대비책을 강구했을 것

 

▲ 통일연구원장과 DMZ학회장을 연임하는 등 한반도 최고의 DMZ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의 ‘그뤼네스 반트’(그린 벨트)와 우리나라 DMZ접경지역 남북공동 활용방안에 대해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마자 동서독을 갈라놓았던 ‘죽음의 띠’ 접경선을 자연을 보호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명의 선’으로 바꾸려는 청사진이 펼쳐지고 행동으로 옮겨졌습니다.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이룩한 또 하나의 빛나는 성과입니다. 다만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에야 분단선의 생태적 보호와 평화적 이용이 실현되었습니다. 

독일 사례를 참조하되 우리의 DMZ접경지역을 분단된 현 시기부터 통일 이후까지 어떻게 평화적으로 보호하고 이용할 것인가를 종합적이지만 단계적으로 구상하고, 우리가 먼저, 남북이 함께 혹은 국제사회와 함께 등으로 세분화하여 추진해야 합니다. 

여러 번의 정상회담, 각종 교류협력에도 남북 간에는 신뢰가 없습니다. ‘비무장’이 아니라 세계 제1의 ‘중무장’ 지대를 그대로 두고 이루어지는 어떠한 합의나 성명도 하루아침에 무시될 수 있습니다. 그 흑역사가 남북 간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DMZ 내에 남북이 합의하고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크기, 방법, 내용으로 남북의 인력과 물자가 국제사회와 함께 어우러지는 협력 사업이 실현된다면 그것이 바로 신뢰의 출발이자 상징이 될 것입니다.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은 DMZ 내 협력이 아니라 통과입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북쪽 접경지역에서만 이루어지는 협력이고, 언젠가 그것이 재개된다고 해도 언제든지 다시 닫힐 수 있습니다. DMZ 내를 포함하는 남북협력을 실현시키고자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DMZ접경지역의 평화적 보호·이용은 국가전략사업으로 추진되어야만 합니다. 남북한은 물론이고 ‘휴전협정’ 당사자의 정치, 군사 등 모든 이해가 얽힌 DMZ접경지역입니다.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거의 모든 부처가 관여되어 있는 DMZ접경지역의 보호·이용에 대통령이 임기 5년 동안 혼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그리고 북한 주민에게 다가가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자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의 변화와 결단과 움직임이 평화통일의 동력입니다. 북한 주민에 접근할 수 있는 여러 통로를 제한한 ‘대북전단금지법’은 문제가 있습니다. 70~80년대의 민주화운동 시절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국제사회에 호소했던가를 기억합니다. 헌법정신에 입각해 북한 주민의 삶 개선에 정부가 손을 놓으면 안 될 것입니다."

 

독일 사례를 참조하되 우리의 DMZ접경지역

분단된 시기부터 통일 이후까지 평화적으로

보호하고 이용할 것인가 종합적 단계적으로

구상하고, 남북이, 국제사회와 함께 추진해야

 

▲ 동서독은 1970년 처음 정상회담을 한 후 20년 후에 통일을 이뤘습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 첫 남북회담을 한 후 20여년이 경과되었지만 통일은 요원해 보입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평소의 신념은 무엇인가요?

"통일과 통일의 시기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일을 이끌겠다고, 통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인생을 결정하는 일이라고 각오하고 노력한다면 통일의 기회는 언제라도 닥칠 수 있습니다. 

1989년 10월 7일 동독 건국 40주년을 맞아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는 낮에는 군사 퍼레이드를, 밤에는 횃불군중시위를 벌리면서 동독은 수백 년을 지속하리라 외쳤습니다. 정확히 한 달 이틀 후 11월 9일 호네커를 연호했던 바로 그 군인과 시민들이 총을 내리고 서독으로 평화의 행진을 시작했고, 동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곳에도 사상 교육, 세뇌와 억압, 무시무시한 비밀경찰 ‘슈타지’가 있었습니다.

국민이 통일을 꿈꾸고 일상의 생활에서 통일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통일의 길을 열어가는 위대한 정치가를 국민이 키우고 선택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고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혹독한 일제식민시대, 강산이 허물어진 전쟁의 참화에서도 우리 할아버지, 부모님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박병직 편집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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