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애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차상욱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3/06/05 [16:55]

김주애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차상욱 논설위원 | 입력 : 2023/06/05 [16:55]

맑스, 엥겔스, 레닌 등 20세기 초 공산주의 기획자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결코 고립된 영토 안에다 세습왕조나 재건해 놓는 모양새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백일몽이 되어버린 그들의 꿈을 급기야 악몽의 단계로 업그레이드 시켜 버린 북한은 무려 3대를 견고히 세습해 온 데 그치지 않고 4대 세습을 기정사실로 굳혀가고 있다.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공식적으로 등판했으니, 머지않아 북한도 불가피했던 세습을 끝내고 정상국가로 갈 거라 대변해온 북한 친화적 인사들의 순진한 기대조차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인질역할...한미동맹에 대한 어깃장

 

그런데 김주애의 등장은 4대 세습을 당연시하는 시각에도 혼란을 불러왔다. 올해 열 살밖에 되지 않는 여자아이라는 점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북한 발 뉴스는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메시지를 읽을 수 없도록 배배 꼬아 놓은 것이 태반이다. 이러한 사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그럴듯한 추측이 정답의 자리를 잠시 점유하는 점쟁이들의 탁자 위 예언과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예언의 경연장이라면 김주애의 4대 세습 여부보다는 김주애의 현재 역할에 대한 추측 두 개를 그 탁자 위에 던져볼까 한다.

 

 첫 번째는 인질역할이다. 문재인 정권이 물러가고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북한을 대하는 미국과 대한민국의 자세는 냉정하게 바뀌게 되었다. 이에 어깃장이라도 놓겠다는 듯 김정은의 언행은 더욱 거칠어졌고 전세계를 상대로 핵위협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가게 되자 전 지구적인 빌런(악당)으로 진화할 수도 있는 김정은에 대한 참수카드가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언급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이미 2017년에 알카에다 2인자인 알 마스리를 폭약도 없는 닌자미사일 R9X (6개의 칼날이 펼쳐짐)로 정확히 제거하는 능력을 보여준 바 있었다. 김정은 또한 한미 양국의 군사적 대응에 적잖이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한동안 종적을 감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김정은은 막대한 재화와 노력을 투입해온 각종 치적사업의 현장에 참석해야만 하는 압력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하늘에서 24시간 북한을 들여다보고 있는 수많은 눈앞에 그대로 노출되어야 하는 행사를 앞두고 김정은은 자신의 어린 딸을 대동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6개의 칼날이 머리 위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 개활지로 나서야 한다면 북한 정서상 후계자가 분명해 보이는 적장자 아들아이보다 딸아이가 적절한 게 맞아 보인다. 제아무리 희대의 빌런이라 해도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린 딸과 함께 있는 그 아버지를 제거해버린다면 미국 입장에서도 그 지탄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김일성 어버이의 우상화 오마쥬

 

두 번째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로의 진입을 위한 모델역할이다. 항일빨치산의 이미지로 시작한 김일성의 수식어는 주석에 이어 어버이 수령를 거쳤다가 영생불멸의 신으로 정리되었다. 김일성이 어버이라 불리는 동안 주민들에게 각인된 가부장적 권위까지 서둘러 승계하고픈 김정은은 겨우 27살의 청년에게 걸맞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쉬웠던지, 집권 초기에는 주로 영유아원이나 어린이 관련시설을 찾아다니며 아동들의 환호 속에 활짝 웃는 이미지로 어린 어버이의 권위를 뒤집어쓰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다가 집권 10주년이 되던 202111월에 드디어 관영매체의 찬양 글을 활용하여 수령이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버이와 수령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있었지만, 올해 들어 드디어 수령 옆으로 어버이가 바짝 다가와 붙기 시작했다. 그 전환점이 되어주는 상황극에 김주애가 무관치 않다는 추측은 북한에서 최근 쏟아져 나오는 김정은과 김주애의 합동이미지를 보면 타당하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제 청년대장의 티를 완전히 벗어버린 거구의 김정은 곁에서 어린소녀가 아버지의 거칠어진 피부를 어루만지는 영상은 가는 곳이 어디든 어김없이 따로 편집하여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이를 품에 안고 아이의 손이 얼굴에 닿는 것을 허락하며 미소 짓던 김일성 어버이의 우상화 그림이 오마쥬로 활용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각 지방마다 대대적으로 공급한 농가주택의 입사행사장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주민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에는 주체조선의 태양또는 경애하는 아버지라는 글귀가 김정은 앞에 붙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이런 추측을 입증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김정은이 진정한 어버이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싶다. 세상에 자기 자식을 미사일 발사장이며 폭탄 만드는 공장처럼 위험한 곳에 데려가는 어버이가 어디 있으며, 만인이 자신에게 조아리는 자리에 데려가 어린 아이를 교만의 늪에 빠뜨리는 교육을 즐겨하는 어버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더욱이 자기 자식을 인질로 삼아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 보려는 의도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정말 어버이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물론 청명한 하늘을 상쾌한 기분으로 바라볼 수 없는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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